서울대, 대기업 출신이 스타트업 이직 후 첫 월급 72,530원 받았습니다 [찐 팀장의 굿초이스]

입력 2022-01-03 10:06   수정 2022-01-03 10:07

[한경잡앤조이=진태인 집토스 전략교육팀장] ‘72,53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묵직한 진동과 함께 메시지가 떴다. 첫 월급. 어느정도 예상했기에 애써 담담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 돈 받으려고 명문대를 다녔나?’
’대기업 다니다가 이제는 7만원 받고 있는 나는 잘 하고 있는 건가?’

피어 오르던 잡념은 이내 군생활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보다 평양이 더 가까웠던 백령도 외딴 섬에서 고된 병영생활을 했다. 접경지역이라 항상 긴장 상태였다. 매일 대포를 쏘았고, 죽음의 위험도 꽤나 있었다. 폐쇄된 지역이라 군기는 차마 말할 수 없이 엄격했다. 그런 곳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하루를 15분 단위로 쪼개서 살았다.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그냥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돌이켜보면 가족들의 고난도 많았다. 폭설이 내리는 밤에도, 태풍이 몰아치던 밤에도 아버지는 밤길을 나서는 일을 해야 했다. 진동의 울림이 채 가시기 전 다시 문자를 마주한다.



‘이 까짓거, 그냥 해치워버리자’

스타트업이나 부동산은 비슷한 점이 참 많다. 많은 사람들이 진입하고, 많은 사람들이 떠난다. 처음부터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고, 좌충우돌 뭐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 나는 그동안 다니던 회사가 유명해서 굳이 내 직장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큰 기업에서 얼마나 많은 업무 지원을 받는지는 스타트업을 들어가보면 알게 된다. 사수도 없고 매뉴얼도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곧 나의 길이요, 회사의 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잘 못 가면 회사도 통째로 잘 못 가게 된다.

부동산 중개 시장에서 핵심 요소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매물’, ‘친절’, ‘전문성’. 세상에 나만 가지고 있는 좋은 조건의 매물이라면 손님 유치는 쉽다. ‘친절’의 대표적인 예로 넉살 좋은 아주머니 중개사님을 떠올리면 쉽다. 그 곳에서는 누구나 ‘훤칠한 청년’이고 ‘참한 아가씨’다. 성격이 친절하지도 못하고, 매물 확보도 못한 신입 중개사라면 적어도 ‘똑똑’ 해야 한다. 나는 전문성을 돋보이기 위해 비지니스와 심리학 서적을 다독했다. 매일 셔츠에 넥타이를 맸다. ‘이마가 보이면 신뢰도가 30% 증가한다’는 글을 읽은 이후, 내 이마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웃음)

부동산 중개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1m 앞에서 듣는 기회를 준다. 이동시간이 길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휴일에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후천적으로 습득한 붙임성은 고객과 직원의 관계를 도와주는 친구로 변화시킨다. 하지만 그 또한 적절한 매물과 전문성이 없다면 허울 좋은 인사 치레로 끝난다. ‘집에 가서 논의해보고 말씀드릴게요’는 ‘안녕히 계세요’의 다른 말이다. 많은 신입 중개사들이 여기를 넘지 못하고 무너진다.

첫 달 72,530원, 그 다음달 32만원, 그 다음달 120만원… 최저시급도 안 되는 월급으로 지낸 지 몇 달 째. 전화가 한 통 왔고, 동료 직원이 받았다.

“여보세요, 아- 그런 매물은 없어요. 감사합니다.”

전화벨은 연신 울렸고, 동료는 끊기 바빴다.
“무슨 고객인데 계속 끊기 바빠요?”

내가 물었다. ‘LH 전세임대주택’(이하 LH전세)이라고 한다. 2018년 초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전세임대주택이라는 제도를 운영 중이었다. 당시 LH 전세는 많은 부동산들이 꺼리는 조건이었다. 분기마다 전국에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당첨되는데 해당 주택은 시장의 10%도 안 된다는 게 부동산들의 생각이었다. LH 전세 수요는 넘쳤고, 공급은 부족했다. 돈도 못 벌고 있던 나는 생각에 빠졌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적은 곳이라면, 그 공급을 내가 하면 전부 내 매출이네?’

LH 전세 공급이 어려운 이유는 간단했다. 제출 서류가 많고 진행 기간이 길다는 것. 국가 기관에 제출해야 하기에 절차와 안정성이 중요했다. 제출 서류 역시 기존 부동산들이 작성하기에 무척 번거롭게 느껴져서 손사래를 쳤다. 이전 직장에서 해외 직수입이 주 업무였던 나는 ‘그냥 서류 3장 만들면 되는 거 아냐?’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먹혀 들었다.

공급을 하려면 공급책을 뚫어야 한다. 부동산의 공급책은 임대인이다. 임대인이 공급할 이유를 제공해야 거래는 성사된다. 사람이 하는 모든 관계는 ‘Give and Take’ 다. 물론 돈만 주고 받는게 아니라, 감정적인 편안함이나 보람, 기쁨, 즐거움도 줄 수 있다. 무작위로 임대인에게 영업하는 것은 효율이 무척 낮다. 간절하고 필요한 임대인에게 가야 그 효과가 증대된다. 나는 그런 임대인을 ‘공실이 많은 임대인, 집이 노후화된 임대인’으로 정했다.

공실이 많은 임대인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LH 전세라도 받아서 관리비 충당이라도 하셔야죠” 노후화된 건물의 임대인에게는 “LH에서 도배 및 장판 지원금도 나오니까, 세입자 잘 들여서 집도 깨끗하게 만들어보시죠 사장님” 이렇게 말이다. 물건 많고 LH 잘 안다는 입소문이 돌아서 관악구에서 꽤 유명해졌다. 2018년 여름에 관악구 전체에서 가장 LH 계약을 많이 체결한 중개사 중 한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 데이터와 매물을 바탕으로 2019년 9월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상생협약을 맺게 되었다. 무명의 부동산 스타트업이 국가 기업과 협약을 맺게 된 것이다.

72,530원에서 포기했다면 만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더 감사한 것은, 이 일은 앞으로 뻗어 나갈 미래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진태인 씨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바이어(MD)로 사회 첫 발을 내 딛었다. 부동산의 무한한 부가가치를 깨닫고 부동산 스타트업 영업직으로 입사했다. 수 년간의 영업직 경험을 바탕으로 집토스에서 사내 교육기관을 운영하며, 미래 사회가 필요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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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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